러시아에는 눈부시게 화려한 도시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빛나는 도시가 있습니다.
바로 표트르 대제의 야심과 이상이 담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입니다.
2024년에는 무려 1,16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고, 86%의 높은 만족도를 기록했을 만큼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모두 갖춘 매혹적인 도시죠.
이런 사실을 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에서 발견한 도시
러시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한 적은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읽다가
표트르 대제가 직접 설계하고 건설한 도시라는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그 역사와 의미를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 이렇게 소개해 봅니다.
🇰🇷 한국과도 인연 깊은 도시
이 도시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과도 역사적 인연이 깊기 때문입니다.
대한제국의 외교관 이범진이 이곳에서 근무했고, 그의 아들 이위종은
1907년 헤이그 밀사로 활약했죠.
1911년 이범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순국하였고, 그의 유해는 지금도
우스펜스키 공동묘역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표트르 대제가 세운 유럽식 도시 속에 한국인의 발자취가 있다는 건 참 인상 깊은 일입니다.
🏰 이름에 담긴 시대의 흐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자신의 수호성인 '성 베드로(Saint Peter)'를 기리며 붙인 이름입니다.
하지만, 도시의 이름은 격동의 시대마다 바뀌어 왔습니다.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 페트로그라드
- 1924년, 레닌 사망 → 레닌그라드
- 1991년, 소련 해체 후 →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환원
도시 이름만으로도 러시아의 20세기 역사를 요약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유럽으로 향하는 창
1703년, 표트르 대제는 발트해 늪지대 위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기존 수도인 모스크바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반면,
그는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개방적이고 근대적인 도시를 원했습니다.
도시의 설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본떠 이루어졌고,
수많은 유럽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운하, 궁전, 정원들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죠.
그래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베네치아’로 불리기도 합니다.
🏛 바로크와 신고전주의의 도시
표트르 대제는 도시를 유럽처럼 웅장하고 세련되게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초빙해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들을 세우게 합니다.
- 여름궁전 - 황제의 여름 별장
- 겨울궁전 - 현재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본관 건물임.
-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 카잔 대성당 등
오늘날까지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들은 이 고전 양식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한 황제의 비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놀랍기만 합니다.
🎭 문학과 예술의 심장
이 도시는 러시아 문학과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고골, 차이콥스키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 도시에서 작품을 남기고 예술을 꽃피웠죠.
특히 푸시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수많은 작품을 썼고,
지금도 그의 동상이 도시 한복판에 세워져 있습니다.
🖼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의 미술품 수집으로 시작된 이 박물관은
오늘날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물론
고대 이집트, 그리스 유물까지 전시하고 있습니다.
예술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장소죠.
🩸 피의 일요일과 혁명의 무대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단지 아름다운 도시만은 아닙니다.
이곳은 수많은 격변과 고통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의 장기화로 곤궁에 처한 민중이
1905년 1월,
겨울궁전 앞에서 노동자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다
황제의 명령으로 군대가 발포해 1,000명 이상이 희생당한 사건—‘피의 일요일’은
제정 러시아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이후 1905년 혁명, 그리고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죠.
🔺 레닌그라드 봉쇄전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공격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레닌그라드)는 무려 900일간 포위되며
물자보급이 끊어져 8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도시가 감당해 온 고통의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겠죠.
🌉 백야와 운하의 도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 도시입니다.
특히 여름철(5월 하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 기간에는
도시 전체가 은은한 햇빛에 잠기며 마법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니 직접 경험하면 어떨지 무척 궁금합니다.
18세기와 19세기에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의 지시에 따라 구축된 많은 운하들은
과거에는 상품을 운반하는 중요 교통로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주변의 독특한 건축물들고 함께 관광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 한 사람의 꿈에서 시작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한 사람의 강력한 비전에서 시작되었고,
그 꿈은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도시를 걸을 때마다, 건물 하나하나마다 유럽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표트르 대제의 열망이 느껴집니다.
그가 바랐던 “유럽으로 향하는 창”,
그 창문은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끌고 있죠.
📌 18~19세기의 로마풍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늘어선 거리와
위도가 높아 여름에는 한 밤중에도 해가 지지 않는 곳, 상트페테르부르크!
표트르 대제의 야망과 이상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그곳에 꼭 가보리라!
상상은 현실의 청사진이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