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로망 중의 하나인 러시아 자유여행을 시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많고 많은 나라 중에 왜 러시아를 가느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러시아의 시베리아 숲과 바이칼 호수 그리고 그들의 생활모습이 궁금했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꼭 한번 타보고 싶었습니다. 러시아어를 전혀 몰라서 두 발과 양쪽 어깨가 고생했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게 여행한 나라, 러시아에 대해 이야기해 드릴게요!
여행 준비
보통 여행 준비라고 하면 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들을 챙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진짜 필요한 여행준비는 마음의 평화였습니다. 러시아로 여행지를 선택한 것에 대해 주변인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나이가 있는 중년들이 평온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동남아나 유럽이 아닌 현재 전쟁 중인 나라에 가는 것에 대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오히려 저는 두려움보다는 미지의 나라에 대한 설렘이 더 컸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마음가짐을 단단히 가져야 하는 이유는 러시아 상황 때문이 아닌 비행기 공포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공포증이 심한 사람이 여행을 좋아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러시아 정세와는 관계없는 제 마음의 문제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달래며 진정시킨 후에야 항공권을 예매했습니다.
여행 기간과 여행 경비
2024년 7월 27일부터 8월 11일까지 15박 16일 일정이었습니다. 중년의 두 부부가 일정을 함께 했고 여행 경비를 결산해 보니 항공권과 여행자 보험 등을 모두 포함해서 1인당 270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1인당 지출 내역을 보면 항공권 1,425,000원 + 여행자보험 20,000원 정도 + 숙소비 550,000 + 식비 그리고 교통비 700,000원 정도로 세분화되겠습니다.
여행 코스
인천공항 출발 - 우즈베키스탄 경유해서 노보시비르스크 도착(공항 1박 호텔 2박) - 크라노야르스크(기차역 1박 호텔 3박) - 이르쿠츠크 바이칼 호수 (호텔 2박) -울란우데 (기차역1박 호텔 2박) - 울란바토르(호텔 2박) - 인천공항 도착
인천공항 출발 후 우즈베키스탄을 경유,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도착했을 때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공항에서 밤을 보낸 후 시내버스를 타고 마음에 정해 둔 호텔로 갔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2박 후 횡단 열차를 이용해 크라노야르스크로 이동했습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3박 후 바이칼 호수를 보기 위해 야간 횡단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갔습니다. 이르쿠츠크 버스터미널에서 중형 버스를 타고 이르쿠츠크 알혼섬에 도착했습니다. 알혼섬에서 2박 체류 후 대형 버스를 타고 알혼섬에서 나와서 이르쿠츠크 기차역에서 내린 후 울란우데 가는 봉고차를 탔습니다. 울란우데에서 2일 동안 관광 후 미니벤을 타고 12시간을 이동해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했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2박 후 제주항공을 이용해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와 식사
첫 도착지인 노보시비르크는 밤 12시가 훨씬 넘어서 도착을 했기 때문에 공항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러시아 가기 전 인터넷을 찾아보니, 러시아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이 안되고 러시아 호텔 전용앱으로만 호텔예약을 해야 된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러시아에 도착한 후에 구글 지도에 나오는 호텔을 먼저 고르고 나서 호텔 쪽으로 가는 버스를 무작정 탔습니다. 마음에 드는 호텔을 찾기 위해 첫날은 많이 걸었습니다. 일정 내내 러시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러시아 호텔앱 사용은 포기하고, 구글에서 마음에 드는 호텔 확인한 후 숙소를 찾아가서 예약한 후 배낭을 맡겨 두고 밖으로 나오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숙소는 3성급과 4성급을 이용했고 숙소 선택 기준은 위치와 가격 그리고 리뷰가 많은 순서로 선택했습니다. 숙박비는 2인실 트윈 베드로 10만 원 전후의 가격을 지불했습니다. 여름휴가 기간이라 인기 숙소는 빈 방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문제없이 호텔 예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러시아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들었기 때문에 숙소가 열악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저희가 방문한 지역은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서 모두 만족했습니다. 크라노야르스크역과 울란우데역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기차역 안의 벤치에서 두 번의 밤을 지새우기도 했지만 러시아는 기차역이 예쁜 궁전 같아서 아무리 피곤해도 모두 용서가 됐습니다.
식사는 아침 식사의 경우는 호텔 조식을 이용했고 점심이나 저녁은 현지식당을 이용했습니다. 현지 음식은 50대 50으로 우리 입에 맞는 음식도 있고 또 느끼해서 입에 맞지 않은 음식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양꼬치구이를 기대하고 갔는데 여름이어서인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끔은 서브웨이나 케밥을 사 먹기도 했습니다.
이동 방법
러시아는 도로 사정은 열악한 편이지만 대중교통은 잘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국내선 항공, 열차, 미니 버스, 대형 버스, 택시 등 이동 수단이 다양하고 이용하기도 편했습니다. 우리는 국내선 항공은 이용하지 않았으며, 시내의 가까운 거리는 모두 걸어서 다녔고, 시내 먼 거리는 주로 택시나 시내버스 그리고 전철을 이용했습니다. 택시는 '얀덱스 go'라는 앱을 사용해서 다녔는데 택시요금이 저렴했습니다. 처음에 그 앱을 사용할 때는 택시가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제대로 못 찾아 우왕좌왕 헤매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한국의 카카오택시처럼 쉽게 부를 수 있었습니다. 장거리는 버스와 봉고차 그리고 열차를 이용했습니다.
추천할 만한 관광지
방문한 곳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관광지 3곳만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노보시비르스크 동물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러시아는 땅이 넓어서일까요? 동물원의 규모에 놀랐고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많은 종류의 동물들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그중에서 하얀 북극곰이 얼음 속에서 뒹구는 모습과 시베리아 호랑이를 가까이서 보니 신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크라노야르스크에 있는 스톨리 국립공원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직선으로 자란 30~ 40미터 되는 잣나무와 하얀 자작나무 그리고 삼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사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더 멋진 장면은 숲 속에 사는 다람쥐나 새들이 사람들을 피하는 게 아니라 더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보고 동물과 교감하며 사는 러시아인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입니다. 최고 수심이 1620m, 길이는 636km로 바다보다도 푸른 호수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특히, 바이칼 호수에 가면 지프차 투어는 무조건 신청해서 하는 게 좋습니다. 울퉁불퉁 푹 패인 산길을 지프차를 타고 반나절 동안 다니는 투어인데 지프차가 멈춘 곳마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체험
러시아 동서를 가로지르는 세계에서 가장 철도 노선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 보는 것도 러시아 여행을 결정한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열차 타는 내내 창밖으로 펼쳐지는 하얀 자작나무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작나무를 보면서 러시아 아이들은 나무를 그릴 때 하얀색으로 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두 번에 걸쳐 2층 침대 횡단열차를 탔습니다. 횡단열차표는 비교적 비싼 편이었고 우리는 하루나 이틀 전에 미리 역에 가서 열차표를 예매를 했습니다. 열차 객실마다 여성 승무원이 있어서 깨끗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역에서 승객이 열차에 오르자마자 승무원은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주고 또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미리 다음 역에서 내린다고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한 번은 에어컨 없는 4인 침대 열차 또 한 번은 쿠페라는 에어컨이 빵빵한 4인실 횡단열차를 탔습니다. 아침에 타고 심야에 내리는 찜통열차는 통로에 나가서 창문을 열어야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 타서 다음날 새벽에 내리는 에어컨이 있는 쿠페 횡단열차는 아주 편안했고 맛있는 저녁 식사도 제공됐습니다. 열차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열차 안에서 모스크바에서 유학 후 몽골로 돌아가는 18살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그 여학생은 우리가 며칠 후에 몽골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 미니벤을 운행하는 기사님을 소개해 주어 저렴하게 (우리 일행 4명만 이용 총102,000원 지불함)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며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만의 아날로그식으로 러시아를 안전하게 여행했습니다. 모스크바로부터도 최대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지역으로 갔기 때문에 불안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외관상으로는 차갑게 보이지만 아주 친절하고 동물들을 좋아하는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러시아어를 전혀 몰라도 번역앱이 있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바이칼 호수에서는 여행 온 러시아 젊은이가 이르크츠쿠행 버스표를 쉽게 구해 주었고, 또 신비로운 기운이 도는 바위가 있는 언덕까지 가이드해 주며 러시아의 전통 샤머니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행의 성공 여부는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